정원목사님의 카페에 갔더니 다음과 같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올려 놓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자기 인생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자신의 잘못된 태도로 인하여 고통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삶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식과 자세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결코 해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새롭게 할 때 비로소 사람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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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daily.co.kr/html/article/2010/02/08/ARTnhn403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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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7:30 최고의 선물-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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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7:17 최고의 선물-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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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가면을 벗어라'에서 래리 크랩은 욕구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에 대한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류시화시인의 책제목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웠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갈망,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베르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처럼 햇살이 너무나 따사로워서 살인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적도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따사로운 햇살 가운데로 찾아드는 섬뜩하고 차가운 허무함을 느껴 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였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외로움이나 허탈함이나, 무의미함등을 경험하고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실존의 불완전성과 완전함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과 공험함에 대해서 래리 크랩은 세 가지욕구로 설명을 하고 있다.

1. 일상적인 욕구

  일상적인 욕구는 사소한 바램에서부터 중대한 소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바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비교적 제어할 수 있는 불편함을 경험한다. 비록, 그 불편함이 때로는 너무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일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나의 존재가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욕구와 가장 큰 차이는 관계성이다. 일상적인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가 전제되어 있지 않는 욕구이다.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욕구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며 개체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식당의 음식이 내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라든가, '건강검진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램들이다.

2. 기본적인욕구

  배우자에게 사랑받고, 존중을 받는 것, 자녀들이 행복하고 책임감 있는 생활을 하는 것, 필요할 때는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친구를 원하는 것 등의 바램이다.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욕구이다. 즉, 기본적인 욕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채워 질 수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일상적인 욕구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좌절을 겪게 되면 제어하기 힘든 불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한 번쯤은 관계 속에서 감정의 폭발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그 대상이 배우자이든, 자녀이든, 직장동료이든, 지나가는 사람이든 말이다. 폭발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영혼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일들로 바빠지면 생활에 대한 활력이 되살아 나고, 이전과 같이 즐거움을 느끼면서 책임감을 회복하게 된다.
 
3. 근본적인 욕구

 우리 인간은 아무런 조건 없이 완전한 사랑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영향을 받도록 지음을 받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욕구를 채워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해결하기 힘든 고통이 뒤따른다. 이 고통은 시간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심연의 고통이다. 이러한 깊은 고통 속에 있을 때 세상의 위로와 즐거움은 목마른 나그네에게는 한 줌의 모래, 한 방울의 물에 불과 할 뿐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갈증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갈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도피하며 살아 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않은 삶은 언제나 공허하고 무의미한 지옥같은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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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과바위

 새벽 4시 정원목사님의 '부르짖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도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통성기도와 묵상기도로 나눌 수도 있는 것 같다. 정원목사님의 또 다른 책, 예수호흡은 묵상기도라고 할 수 있고, 부르짖는 기도는 통성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목사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한다. 이스라엘백성도 갈급할 때면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셨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교회가 부르짖는 기도에서는 최고였는데, 부르짖는 기도가 약해지면서 교회의 부흥도 함께 시들해졌다고도 말씀하신다. 어찌 되었든, 나의 경우에는 묵상기도도 좋지만, 통성기도를 통해서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 좋을 같았다. 묵상기도 호흡기도는 깊이는 깊어지지만, 그만큼 기운이 정체 될 수도 있으니, 오늘 새벽기도에서는 통성으로 주님을 크게 불러 봐야겠다.

새벽 5시 뒤따르는 스포티지가 급하게 달려서 지나친다. 어디를 저리고 급하게 가시나 했는데, 영락교회앞에 차를 세운다. 기도가시느라 그리도 급하게 가셨구나! 예배당에 들어서니 아직은 조용하고 어둑하다. 오른쪽 앞열에 앉아서 성경책을 펼치니 박정수목사님이 자리하신다. 
 "오늘은 로마서 1장 25절말씀까지 교독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16절과 17절말씀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신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박정수목사님은 바울이 그러하였듯이 우리 또한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세상에 전달될 수 있는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아멘!

 "통성으로 주님 세번을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박정수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는 통성이 부르짖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굳이 통성으로 큰 목소리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정원목사님과 박정수목사님을 통해서 부르짖는 기도를 알려주셨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건강한 모습으로 이 곳까지 나올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곳까지 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 나의 모든 생각, 이불, 대문, 엘리베이터, 자동차, 하늘, 별, 얼음, 서리, 아스팔트, 산에 들려오는 바람소리,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단 한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개도. 하나님 아버지, 저의 교만과 저의 사랑과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저를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부디 제 손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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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과바위
수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믿는 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웃어 넘기고, 어떤 사람은 진실로 믿음을 가지고 뭔가를 하기도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 사람 이상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한번쯤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한, 꿈을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시각화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날들이 모이면 원하는 바를 꼭 성취할 것도 같다. 다만,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어떤 목표를 정해서 매진해야 할까? 돌진없는 목표는 허무함이요, 방향성이 없는 돌진은 무모함이라고 칸트가 말했다. 그러니 돌진과 목표가 모두 중요하다면, 돌진 이전에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 또한 진정한 돌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적인 돌진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예전에는 훌륭한 사람, 커다란 저택, 고급승용차, 여유로운 여행들을 꿈꾸었고, 보물지도까지 만들어서 거실벽에 붙여 놓은 적도 있었다. 거실에 걸린 보물지도를 볼 때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인생에서 빠져 버린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서야 그 허전한의 실체를 찾았다. 그것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요 꿈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허상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만드신 피조물일뿐이니,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보물지도에 붙여 놓은 그 많은 것들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뿐이요, 그것이 목적이나 꿈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믿음에 관해서 히브리서에는 다음과 같이 구절이 나온다.

히브리서 11장 0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11장 0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
                         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장 07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11장 15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순서상으로 믿음 다음 현실이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은 곧 실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하나님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늘 그 곳에 계신다.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 별 것이 아닌 사건일 수도 있지만, 산골짜기에 사는 늙은이가 엄청나게 큰 배를 엄청나게 많은 시간동안 제작한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기적이다. 노아의 믿음을 상상해보면 아찔할 만큼 크고 높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경멸과 무시는 노아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과 부르심만이 노아인생에는 유일한 꿈이었고 목표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하늘을 향한 꿈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보물지도는 그 다음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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